국내소식



1. 시카고 안요셉 선교사 특강 - 출애굽 신세대들을 위한 하나님의 광야훈련
2012년 1월 18일, 안암 UBF 2부 수요저녁예배에서 안요셉 선교사는 "출애굽 신세대들을 위한 하나님의 광야훈련(GOD'S WILDERNESS TRAINING FOR THE NEW GENERATION OF EXODUS)" 제목으로 특강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정탐 후 악평하는 열 두령의 보고를 따라 믿음을 잃었을 때, 40년 동안 14,600일의 광야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광야훈련기간에 60만명의 불신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고, 새로운 60만명의 다음 세대들이 하나님의 정병으로 양성되어졌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셨고, 매일 만나를 주셨던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의 훈련을 통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다음 세대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정복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요셉 선교사는 선교역사 초창기 광야와 같았던 중남미 선교현지에서 매일 일용할양식과 매주 소감쓰기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고, 주일예배 메시지와 하나님의 양무리를 꾸준히 섬겼을 때, 최우선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며, 영육간의 능력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40 여년 선교사역에 쓰임 받았지만 지금도 땅 끝까지 이르러 제자 양성을 섬기는 비젼으로 불타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신세대들이 하나님께 더욱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땅 끝까지 이르러 제자를 세울 수 있도록 믿음의 말을 하며 동역하고, 저희 스스로도 더욱 더 하나님의 뜨거운 선교 열정을 덧입어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다음 링크에서 안요셉 선교사의 특강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아래에는 지난 주, 안암2부 주일예배를 섬겼던 정노아 선교사(브라질, 맥켄지 개척)의 메시지 중에서 선교보고를 따로 간추렸습니다.
2. 브라질 정노아 선교사 - 선교보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출애굽기: 19: 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 지니라.”
저는 공부에 전력을 다하여 1984년 고대 행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친구 사귀는 것을 못하여 혼자일 때가 많았습니다. 함께 술 마시는 친구들은 있었지만 깊이 사귀는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세상에 홀로 던져진 것 같은 고독과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상처 받을 것이 두려워 마음 문을 꼭꼭 닫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를 군대를 마치고 2학년에 복학했을 때 말씀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당시 저는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영적인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자님의 간곡한 권유로 여름 수양회에 참석하였는데 그때가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 줄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십자가 강의를 듣는 가운데 예수님의 기도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다.” 저는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나의 슬픔과 내면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저는 저의 죄를 눈물로 자복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꿈틀거렸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고독이 사라졌습니다. 꿈이었던 행시를 포기하고 캠퍼스 목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3학년 때에는 요회 목자로 세움을 받고 요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자의식이 많아서 많은 양을 치진 못하였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피싱을 감당하였으며 저의 진심과 열심을 드려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서울은행 현재의 하나은행에 입사하였습니다. 믿음의 결혼을 하여 3명의 자녀가 태어났고 내집도 장만하였습니다.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낮에는 은행원으로 저녁에는 경원전문대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1997년의 IMF 구제 금융은 제 인생의 두번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외환위기로 경제가 얼어붙고 불안심리가 확산되자 그 동안 안정적인 직업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은행도 흔들거렸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자신도 모르게 형식적이 되어 열정을 잃어버렸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자 저의 마음에는 새로운 땅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소원이 생겨났습니다. 1998년 5월 직장에 사표를 제출하고 브라질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브라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이사야서 41장 10절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저는 하나님께서 제 앞에 가셔서 선교사의 길을 평탄케 하실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적어도 2,3년만 고생하면 물질자립도 이루고 수많은 브라질 양들을 제자로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당시 브라질에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사면령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라과이를 통하여 일부러 불법체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저의 가족은 사면령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브라질은 시스템이 엉성했기 때문에 저와 동역자는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지만 자녀들의 영주권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사면령 대상이 아닌 것이 발각되어 세 아이와 함께 그 보호자였던 저도 추방령을 받았습니다. 저는 브라질에 도착한지 6개월 만에 추방령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불법체류자로 살 것인가 고민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훈련하심을 영접하고 사명의 땅에 남고자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다니고 있던 교포금융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하였습니다.
그 후에 신문사에서 번역하는 일, 옷 부속품을 만드는 일, 소매업 등 다양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레베카 선교사의 소개로 한국인이 운영하던 가게를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권리금으로 주고 가게를 인수하였습니다. 그러나 가게를 운영할 자금도 없었고 경험도 없어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일년간은 허리띠가 유행하여 허리띠를 만들어 납품하였습니다. 그러나 유행이 지나가자 또 처음 제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옷을 만들기로 방향을 정하고 한국인인 한 디자이너로부터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경험 없이 만든 옷들은 팔리지 않고 재고로 싸여갔습니다. 한 교민이 70년대 한국 시골 장터의 옷 같다며 농담을 하였는데 이는 제 자존심을 심히 상하게 하였습니다. 한국에 있던 집을 팔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붙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 때 브라질의 대형 의류 업체에 납품하는 사람을 알게 되어 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문을 받아 옷을 만들어 납품을 하였기 때문에 공장은 돌아갔지만 이윤이 박하였습니다. 납기일을 못 맞추거나 불량품이 많으면 주문이 취소가 되어 막대한 손실이 입었기 때문에 저와 동역자는 납기일을 맞추고자 공장에서 밤을 세워가며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비수기가 되면 주문도 줄기 때문에 비수기를 지나고 나면 언제나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3년 정도를 보내고 나니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육신이 피곤하니 성격이 날카로워 져 자녀들에게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이러다간 병 나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볼 때 이 기간 동안 옷을 어떻게 만드는가, 판로는 어떻게 개척해야 하는가 배우는 소중한 시기였습니다.
한계에 부딪치자 이번에는 위탁판매로 전환하였습니다. 옷을 만들어 먼저 납품하고 팔리는 것만 돈으로 받고 팔리지 않는 옷은 반품을 받는 조건이었습니다. 전보다는 이윤은 높았지만 반품되는 옷은 모두 재고가 되어 원가 이하로 팔았습니다. 누적되는 손실로 인해 종업원 월급과 가게월세 그리고 외상으로 산 원단값을 갚느라 하루하루 살얼음을 걸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떻게 돈을 막나 근심과 걱정으로 앞길이 막막하였습니다. 월 3%의 살인적인 이자를 갚으며 하루 하루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힘든 일들이 계속하여 일어났습니다. 집에 2인조 강도가 들어와 있는 돈을 빼앗기고 공포에 떨었으며 밤에 도둑이 가게에 들어와 옷과 원단과 재단 칼을 훔쳐갔습니다. 상표표기 잘못으로 거액의 벌금을 물었고 바느질 집 문제로 경찰서에 붙들려가야 했습니다. 내가 왜 이 우라질 같은 나라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생각하니 후회가 이만 저만 아니었습니다. 나훈아의 ‘머나먼 북쪽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노래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선교사로 나와서 하나님 역사도 제대로 섬겨보지도 못하고 실컷 고생만 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이 밀려왔습니다. 저와 동역자는 점점 웃음을 잃고 언제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신경질적이 되었으며 자녀들에게 항상 화난 것 같다는 불평을 들었습니다.
선교사 생활 8년 째인 2006년 저희 가정은 말 그대로 절망적인 상황을 지나고 있습니다. 브라질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지만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끝낼 수는 없었습니다. 브라질 영혼들을 섬기기 위해 집도 팔고 직장도 버리고 부모 형제도 버리고 이 땅에 왔는데 그렇게 끝낼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 해 말 요절 심포지움을 감당하며 2007년 한 해를 온 힘을 다해 하나님께 매달려 보고 그래도 안되면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제가 붙들 수 있었던 것은 말씀과 기도 밖에는 없었습니다. 저는 시편 121편 1절과 2절 말씀을 1년 요절로 붙들고 신년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라.” 저는 이 말씀을 붙들고 절박한 심령이 되어 자나깨나 도우심을 구하였습니다. 일어나면 먼저 말씀을 외우고 기도했습니다. 원단을 살 때도 기도하고 깔면서도 기도하고 재단을 하면서도 기도하고 포장을 하면서도 기도하고 이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그렇게 간절하게 매달리며 기도했습니다. 그 해 4월부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동안 간헐적으로 옷을 사던 한 업체가 그 해에 일년 내내 지속적으로 좋은 가격에 주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현찰로 결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포교회 한 장로님이 제가 평신도 선교사인 것을 알고 지속적으로 주문을 해 주었습니다. 저희 가게는 자리가 좋지 않았지만 6년을 한 곳에서 장사를 하니 단골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을 계기로 거짓말같이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그 동안의 손실을 다 만회시켜 주시고 한국에서 가졌던 집보다 더 넓고 좋은 집을 주셨습니다. 자녀들의 영주권문제도 해결해 주시고 자녀들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키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독수리가 그 새끼를 훈련하듯이 저를 연단하시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게 하시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2002년 쯤 김요셉 선교사님 가정과 백 사가랴 선교사님 가정 그리고 저희 가정이 마켄지를 개척하기 위해 파송되었습니다. 마켄지 대학은 미국 마켄지 가문에서 파송 나온 장로교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사립대학입니다. 이 대학은 이단의 전도를 막고자 전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으며 또 치안이 불안하기 때문에 골목 골목에 경비원들이 보초를 서서 외부인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저와 동역자는 전도하다가 붙들려 교장실에 불려간 후 쫓겨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외적인 어려움 외에도 현실적인 문제가 더 시급했습니다. 선교사들은 당장 먹고 사는 일, 그리고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 까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어학에 시간과 물질을 투자할 수 없어 포어 공부에 진전이 더뎠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줄기차게 기도해 왔습니다. 레베카 선교사님은 말은 되지 않지만 출퇴근 길에 일부러 캠퍼스에 들려 기도의 단을 쌓았습니다. 선교사 생활 10년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물질자립의 기초를 놓으시고 저희들의 마음 가운데 캠퍼스 양들을 치고자 하는 소원을 주셨습니다.
2009년부터 먼저 사모님들이 마켄지 대학 어학코스에 등록하여 일주일에 한번 캠퍼스를 심방하며피싱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마켄지 양들은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항상 바쁩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브라질 문화의 영향으로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일대일 약속은 쉽게 하지만 약속시간에 나온 학생의 거의 없습니다. 어쩌다 나온 학생도 일대일 한 두번 하고는 그만 두었습니다. 현재 법대 3학년인 마리아나 자매님을 브리실라 선교사가 일대일로 돕고 있습니다. 요셉선교사의 큰 아들인 이삭이가 쌍파울로 주립대 치대 3학년에 재학중인데 자립적으로 피싱을 하고 빠울루, 루카스 형제들을 일대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 선교사님의 딸 사라와 저의 아들들인 노아와 사무엘이 올해 대학 입시시험을 끝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팀이 형성됨으로 선교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저도 늦은 나이지만 마켄지 대학에 입학하고자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비록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저희 선교사님을 연단하시고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들의 진심과 기도를 받으시고 마켄지 센터 가운데 제자양성역사를 이루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지난 13년 간의 선교사 생활을 돌아볼 때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제에게 두신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고 축복을 받는 비결임을 배웁니다. 저는 마켄지 개척역사를 섬기면서 싫건 좋건 일주일에 한편의 메시지를 섬겨야 했습니다. 때로는 이 일이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올 때도 있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일 때도 있었습니다. 불신과 무능력에 절망할 때 ‘네가 무슨 선교사냐’하는 사단의 고소를 끊임없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매주 말씀을 붙들게 하심으로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선교사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도우시고 때가 되면 역사할 실 것이라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이 말씀은 저에게 부담이 아니라 소망과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인터넷 선교부

